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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의 촉에 잉크를 적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어내린다. 차분한 글씨에 바르고, 올곧게,

내 진심을 담아,

내 자신을 담아.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은,

즉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인생을 살아왔죠. 그게 제가 택했던, 제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더욱, 헷갈립니다. 저는 따뜻한 사람이 아닙니다. 되려, 친절과 예의속에, 서리같은 속내를 파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친절은 남에게 거절당하지 않기 위한 제 방식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무서우니까요. 

자조에 찬 서글픈, 무엇이, 차올랐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내 진심을 토해내고 싶습니다.

저는 이미 한번, 당신에게 제 표피를 걷어 속을 드러냈죠.

당신이 나에게 진심이었으니까.

나도 당신에게 진심을 다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합니다. 제 속내를 끄집어냅니다.

종이 위에 펼쳐 늘어놓고, 되새김질합니다.

오늘도, 편지를 다 끝맺지 못한 채,

8월의 끝자락을 놓쳐버렸다.

새로운, 한달의 시작.

9월.

오늘은 거울을 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머리카락이 조금 많이 길었나. 머리카락, 잘라야겠지.

 

 

다른 사람의 섬세한 손길에 이끌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은 내가 혼자 모르고 있던 시간을 담고있다.

나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 내 몸은 시간이 그동안 흘렀구나. 새삼 재차 확인해버린다.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시간들. 아쉬웠다. 

… 이전보다 조금 짧게 잘렸나,

 

 

 

뭐, 괜찮을까요.

어차피, 다시 자랄텐데.

시간은, 흐른다.

 

 

 

 

그동안 많이 회복한 몸은, 의사의 입에서 외출 허가를 받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하얗디 하얀, 병원은 하얀색에 잡아먹히는 듯 해 줄곧 답답했고, 두려웠다. 드디어 외출. 은근한 흥에 살짝은 잠겨봤다.

 

 

목발을 의지해서, 언젠가 외출한 바깥에서, 만난 꽃집. 그 창가 앞에서 잠시간 서성인다.

C_N - TT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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