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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녕하세요 은하씨, 오늘은 결심을 했어요.

재활을 하는 동안, 어느정도 심리 치료도 병행했고, 이제 더이상은 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네요. 당신의 시간은 내가 없는 동안 어떤 식으로 흘렀을까요.

 

 

우리 모두에게 상처였던, 상처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던. 밤산책. 그 이면세계는 제 정신세계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 상처입겠죠. 당신을 상처입히기 싫었다, -... 하지만, 저는 동시에 당신을 존중하고 싶었고, 이기적이었지만, 분명 처절하게 , 다칠 것을 알았지만, 막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용기를,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제 세계를 이해시키고 싶었던, 추악한 면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라도, 이렇게 끔찍하게 이기적인 저라도, 괜찮을까요.

-

 

 

호흡을 가다듬는다, 아스팔트 위의 당신은 너무나도 , 붉어서, 당신같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으면 했는데, ....... 나는 당신을 상처 입히고 마는, 추악한 짐승이다.

붉은 색과, 은하씨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 아...

 

 

보기가 힘들었다.

속이 너무 시리고, 시퍼런 날붙이로 난동피우는 듯, 마구마구, 베여버려서....

하지만 남아있는 건, 더이상 없어서,

슬퍼졌다.

 

 

아파요?

 

 

…라고, 물어본 내 자신도, 추악해서.

슬퍼졌다.

 

 

-

과거를 곱씹다가, 문득 혀를 씹어버렸다. 이 버릇은 언제 고쳐질까.

오늘은,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에요. 짐은 다 싸뒀지만, 아직 빼지 않았어요.

할 일 먼저 하고, 돌아와서 뒷수습 하려고요. 그 뒤에, 해도 괜찮을거예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병원, 걸음, 걸음, 꽃집, 걸음, 보도블럭, 주유소, 길, 편의점, 상점, 걸음, 걸음, 걸음, 숲길...

발걸음은 유천대학교를 향한다.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많이, 무서웠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걸음이 하나씩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그림자로부터 뻗어나와, 못가게 잡아버리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심호흡 한번,  왼손에 들려있는, 푸른 색의 한송이 꽃, 그리고,

소중하게 간직해온, 약간은 울퉁불퉁해진 편지를 본다.

그 겉면의 봉투엔, 아직도 또박또박 유 서에게.라고 적혀있었다. 

 

오른손엔, 어떤 문서자진사퇴서도 있었지.

 

 

 

 

다시 한번, 크게 내쉬는

-... 한숨.

터,벅. 터벅. 옮기는 발자국.

드디어 유천대학교의 교문이 보여, 씁쓸한, 어색한 웃음만. 번져나간다.

...당신이 옆에 있으면 좋을텐데. 

 

라고 또, 초라한 마음을 읊조린다.

길의 끝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보여주는 듯,

단풍이 기세를 몰아 유천대학교 앞을 장식하고 있다.

 

붉은 색.....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떨쳐내버린다. 어?

 

 

 

 

어.

아,

아....

 

 

그 고개의 끝에 보였던건, 분명히....

 

 

 

 

항상 그리고 그리던, 하늘색의 머리카락. 소중한 색.

..... 파도처럼 급작스럽게, 차오르는, 

 

일말의 행복.

벅차오르는 기쁨.

 

 

억누르지 못해, 발을 최대한, 빠르게 옮겨, 당신의 앞으로, 앞으로. 채이는 돌멩이에,

자세가 무너져, 넘어질 뻔했으나,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아프지 않을 정도로, 품에 안고싶었다.

하지만, 허락은 받지 않았는걸.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작게 망설이는 발걸음.

 

 

...그래도. 그동안 못봤잖아요. 나는, 보고싶었어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걸요, 순대국밥 주셨던 식당 아주머니께 인사도 해야하고, 잃어버린 소시지한테 편지도 써야하고, 밥 한번 먹자고, 당신에게.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말도 해야해요.

첫번째 밥은 제가 사고, 후식으로는 소시지가 좋겠죠, 목이 메이면 녹차를 마시고, 피크닉, 티타임, 교양도 같이 들어야하고, 같이, 해야할게 많아요.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하씨가, 부담스럽지 않을 선에서, 전 항상,  ...

 

휘몰아치는, 그동안 하고싶었던, 진심들, 감정들.

당신이 정말, 이기적으로, 보고싶었어요, 살아서, 직접.

 

 

 

벅차오르는, 감정에, 한번쯤은, 내 진심을 담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힘을 실어, 품에 안는다.

매우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당신이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놓쳐버린 시간을,

내가 걷지 못했던 계절을.

당신과 같이 시작하고 싶어요.

​자작나무 숲, 그 끝에, 당신에게 건넬 꽃을 한송이 꺾습니다.

​푸른, 장미를 한송이 꺾어, 당신에게 전합니다.

9월에, 차마 편지에 쓰지 못했던.

꼭, 말로 직접 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문구를

입 밖으로,

바르고,

정직하게.

품 속의 당신에게,​ 전한다.

좋아합니다.​

이하늘로 살았던 당신도,

이은하로 사는 당신도.

​당신을, 전부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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